그렇게나마 당신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내' 모습을 한 채로 실낱같은 에테르를 움켜쥐고, 언제고 다시 당신과 여행할 날만을 기다렸을 텐데.
"사실은 오래 전부터 기댈 곳 없는 외톨이잖아요……."
어째서 우리의 여행은 매번 넘쳐나는 피와 에테르로 물들어 질퍽거리는가. 이 여행길이 이슈가르드 정교 신자의 순례길도, 이단을 가려낸다는 마녀의 비탈길도 아닐진대, 어째서 항상 가는 곳마다 당신은 당신의 의지를, 선한 마음을, 인내를 시험받고 그들이 바라는 영웅이 되어야 하는가. 당신은 이미, 누군가를 지켜낸 진정한 암흑기사인데.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
당신의 곁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언뜻 당신이 미스트의 말에 대답하는 것이 들린다. 그래. 당신의 마음과 함께하는 누군가가 있었기에, 당신은 결코 혼자였던 적이 없었지.
지금처럼.
"……맞아요.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는 고독합니다. 그 다리를 움직일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니. 그렇지만… 곁을 지나가는 사람의 한마디가 고개를 들게 한다는 것을. 누군가가 내민 손이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워준다는 것을. 그런 흔하디흔한 기적에 힘을 얻어 나아간다는 것을 그녀는 이미 스스로 입증했답니다."
"설마…… 프레이냐……!?"
아아, 나의 주인이여. 당신마저 그와 같이 놀라면 어떡합니까. 비록 환영일지라도 나는 마지막까지 당신과 함께 할 존재인 것을.
"……준비는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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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당신과 함께 전투에 나선 것까지는 좋았다. 이전처럼 환술로 보조하는 것이 아닌 양손검을 들고, 당신의 곁에서 암흑기사의 기술을 남김없이 펼쳐가며 그들과 맞선 것까지는 좋았으나.
"……주인?"
왜 당신은, 이 바닥에 힘없이 쓰러져 있나.
나는 이번에도, 당신을 지키지 못했나.
새하얗게 변한 머릿속은 쥐고 있던 양손검을 놓게 만들었다. 당신은 내가 지켜야 할 유일한 사람이었는데. 대해일을 일으키는 야만신을 상대로 오갈 데 없는 배 위에서 싸웠을 때에도, 지금도… 내게 남은 것은 당신뿐인데. 황급히 달려가 당신을 끌어안고 살핀다. 아, 심장이 뛰지 않는다. 호흡도 들리지 않는다. 당신은, 정말로 죽었나?
안 되지. 이대로 당신이 떠나버린다면 우리가 했던 약속은. 또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했잖아.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남았어. 그러니, 먼저 눈을 감지 마. 어떻게든 살릴 테니.
에테르를 끌어모아 환술을 시전했다. 퍼붓는다는 말로도 모자랄 정도로. 애타고 간절한 몸짓으로. 차가워졌던 몸에 잠시나마 숨과 온기가 돌 때까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눈을 뜨지 않는다.
"……약속이라고, 했잖습니까. 같이 떠나자고 했는데."
이번에도 당신은 나를 홀로 둔 채 여행을 떠났나. 그렇다면 저 하늘에 홀로 떠 있는 별은 당신의 별인가. 우리가 걸어온 길이 이런 결말이라는 것은 생각해본 적 없다. 무력하게 쓰러진 당신도, 당신의 에테르로 아직 이 곳에 남아있는 나도. 참으로 생경한 풍경이다. 나조차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당신이라고 떠올려봤을까.
싸늘히 식은 당신을 품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이대로 당신을 안고 있는다면 다시금 일어날까. 일어나서, 내 앞에서 이 두 다리로 걸어다닐까. 그 언젠가 구름안개 거리에 머물던 때처럼, 불쑥 찾아와 내게 말을 걸까. 그 때마다 내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어 조금은 기뻤다는 걸, 당신은 알까.
지금도 당신에게 내 목소리가, 내 울음이, 내 바람이 닿을까.
"살라고, 했잖아."
분명 너는 내 선택을 좋아하지 않을 테다.
하지만 네가 없는 세계는 내게 무슨 의미가 있지?
나의 주인이여, 내 목소리를 들어줘.
그 마음을 잃지 말아줘. 나를 찾아줘. 기억해줘…….
"……프레이?"
역류하는 에테르와 푸른 빛으로 흩어지는 몸 사이에서 마주한, 힘겹게 뜨인 당신의 두 눈이 너무나도 익숙해서. 어쩌면 조금은 울었던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