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잭] 貴方の為に (당신을 위해)
[론잭] 貴方の為に (당신을 위해)
written by 틴시아
http://corrupts.tistory.com
For. 구깃님
BGM : 마후마후 - 참회참배 (懺悔参り)
죽음의 신 잭 × 계약자 론
TW : 살해에 대한 직간접적 묘사
죽음이 그의 부름에 답한 건 밤이었다. 대부분의 생명이 잠드는 고요한 시간이자, 죽음이 지상 가까이 올라와서 달빛을 바라보며 무료한 안식을 취하기에 더없이 좋은 시간. 원래라면 죽음은 그날 밤도 안개 낀 거리를 거닐며 희뿌연 달빛을 구경하고 있을 터였다. 그것은 수천 년 전부터 당연시된 죽음의 일상이었고, 습관이었으며, 죽음이 갈구해왔던 안식의 일부였다. 죽음 스스로는 죽을 수 없기에 죽음은 고요 속에 자신을 맡기는 것으로 안식의 타협점을 찾았다.
그런데 수천 년 만에 처음으로, 죽음을 고요한 안식 속에서 이끌어낸 이가 있었다.
"잭,이라고 했던가…. 네가 신이든 악마든 상관없어. 내 연인을, 링컨을 죽인 자들에게 복수하게 해줘. 단, 확실하게 그들을 죽일 수 있다면 좋겠군. 단순히 불행하게 만드는 것 정도는 나라도 할 수 있으니까."
"…네 이름을 알려준다면,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어. 네가 원하는 이들에게 확실한 죽음을 선사해주지."
"그 대답 마음에 드는군. 로널드 힐이다. …론이라고 불러도 상관없고."
연인의 복수를 원하며 신과 악마를 찾다 죽음을 불러낸 이는, 자신이 그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게 됐는지 깨닫자마자 곧바로 설계를 하기 시작했다. 아주 자연스러운 죽음을 연출하기 위한 설계.
죽음은 꽤 오래 자신을 불러낸 계약자ー론의 곁에 머물며 그를 지켜보았다. 수천 년 간 취했고 지금도 바라는 안식보다 계약자의 삶이 더 궁금했으므로, 날마다 찾아오는 밤에도 죽음은 거리를 거니는 것 대신 그의 곁을 택했다. 그는 때때로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방에 틀어박혀 밤새 서류를 살폈으며, 혹은 누군가의 '죽음'을 죽음에게 부탁하곤 했다. 누군가는 타살로, 누군가는 자살로, 혹은 과로사나 폭주로 인한 죽음이라던가. 종류는 다양했으나 죽음은 그 모든 '죽음'을 아우르고 있었으므로 그가 어떤 방식을 부탁하든 개의치 않고 받아들였다.
"이만큼이면, 되는 건가?"
"그만큼만 죽여줘, 일단은. 하루에 한 명씩. 낮에 충분히 증거들을 뿌려둬야 하니 밤에만. 여차하면 더 죽여야겠지만, 지금은 이 정도면 설계에 충분하겠어."
"…그러지."
죽음은 론에게 그 어떤 것도 묻지 않고, 부탁받은 '죽음'을 그들에게 선사했다. 밤마다 연달아 사람이 죽어나가자 거리와 사람들의 얼굴에는 안개만큼이나 짙은 음울함이 낮밤을 가리지 않고 깔렸고 거처도 돈도 없는 빈민들의 온갖 '죽음' 역시도 모방이라는 화려한 핑계로 포장된 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어느새 밤의 거리에는 안식 대신 달빛을 받아 제 존재를 드러내는 지옥의 귀퉁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론은, 여전히 비슷하나 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가 죽음에게 부탁하는 횟수는 점차 늘어갔고 대부분을 방에 틀어박혀 지냈다.
죽음은 거리에서 사라진 고요한 안식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자신이 늘 바라보곤 했던 달빛은 매번 그 자리에 있었고, 결코 잊히지 않으나 찾는 이 없던 신인 자신에게 오랜만에 생긴 계약자가 자신을 그토록 필요로 했다는 사실에 더없이 만족하며 그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안식은 계약자에 관한 것보다 우선시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갓 계약했던 당시보다 더 오래, 더 정성 들여 몇 명이고 제 설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만족감과는 별개로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억지로 내리눌러도 조금씩 커져가는 불안감은 자신의 계약자를 바라보는 죽음의 눈에 옅은 어둠을 드리웠다.
…아직 복수에 사로잡힌 인간이라 그런 것뿐일 테니, 복수가 끝나면 그도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겠지. 분명 지금보다 훨씬 나은 모습일 테지. 그럼 조금 더 아껴도 괜찮지 않으려나.
죽음은 그리 생각했으나, 그가 인간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
"잭."
죽음은 론의 부름에도 멍하니 창가에 서서 어김없이 거리에 내려앉는 달빛의 끝자락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가 탁한 빛을 띄는 붉은 눈동자는 초점이 매우 흐려 무언가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고 평소엔 달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나던 은발도 빛이 죽어버린 듯 어둡게 반짝였다. 곧 그대로 사라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죽음을 살피던 론이 천천히 다가왔다.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거야. 불러도 대답도 없고."
"…저길 봐. 골목 어귀에서 비틀거리는 남자."
물음과 한참 간격을 두고 작게 흘러나온 대답에 론은 눈가를 약간 찌푸리며 죽음이 말하는 남자의 형체를 찾았다.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작았지만 비틀거리는 모습은 달빛이 환해서인지 제법 선명하게 보였다. 론은 제 기억을 더듬었다. 아마… 오늘 낮에 잭에게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죽게 해달라고 부탁했던 남자겠지. 매주 이맘때면 펍에서 술을 잔뜩 마시고 돌아온다는 것도 알려줬었고. 그리고… 제 기억에서 별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던 론은 죽음이 왜 그 남자를 보고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한 부탁으로 인해 곧 죽을 자인데.
"저런 건 왜 보고 있나.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죽는지 궁금하기라도 한 건가? 그런 게 취향이라면 말리진 않겠지만."
"……."
"차라리 나가서 네가 좋아하는 달이라도 구경하지그래. 만월이던데. 안개도 슬슬 낄 테니까 말이야. …아, 나갈 거면 이 자도 좀 부탁하지."
죽음은 제게 내밀어지는 서류뭉치를 그저 응시했다. 자신이 이것을 받아들면 또 하나의 생명이 덧없이 사라져 갈 테다.
그래. 덧없이.
신이란 건 인간과 크게 별다른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인간에게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간섭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이유로 신이 되어 자신에게 무언가 바라는 이를 찾고, 계약하고, 그 계약자의 바람을 들어줌으로써 단 몇 초 만에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 명의 운명을 뒤틀어버린다. 이 세계에서 사이퍼, 능력자라 불리는 인간 -제 계약자인 론 역시도 모래를 다루는 능력자이고- 과는 꽤나 닮은 점이 많지만, 동시에 그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선 확실히 상위의 존재였다.
특히 죽음이란 건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확연히 나타나는 영향력이라, 죽음ー잭은 론의 부탁으로 자신의 힘을 이용해 누군가를 죽일 때마다, 설사 그 누군가가 자신이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이들이라 할지라도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볼 때에 미묘한 거북함이 일어났었다. 하지만 오랜만의 계약이라 그러한 것이다고 치부하곤 애써 평온한 척하며 론의 곁에서 머물러왔으나 계속해서 비능력자와 능력자를 가리지 않고 죽이기 위한 설계를 세우는 그를 더 이상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이미 너와 내가 수없이 뒤틀어 놓은 것들을 되돌리기엔 늦었다는 걸 알지만, 그래서 별 의미 없는 짓임을 알면서도 나는 네 설계를 무너뜨리려 한다.
네 복수는 진작에 끝났지만 네게 남은 분노로 인해 자꾸만 다른 인간들을 지옥의 아가리에 던져 넣으려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내가 잘못했어.
그러니까, 더 망가져 가지 마.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 너 또한 원래대로 돌아올까.
"내게 더 이상 도움을 바라지 마. 이제 난 너를 도와줄 수 없어. 계약은 여기서 끝이야."
"…뭐? 갑자기 그게 무슨 헛소리지."
"네가 정말 죽길 바랐던 이들은 이미 오래전에 모두 죽었지. 그러니까, 네 부탁은 이미 충분히 들어주었어."
처음 품어보는 감정은 서서히 숨을 조르다 눈을 가렸고 결국 제 손으로 모든 것을 뒤틀게 만들었다. 설계에 집착하게 된 제 계약자는 그 설계로 그의 주변을 파멸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거기서 자신이 빠진다면, 그의 설계는 어그러지지 않을까. 설계 속에서 죽어야 할 이들이 죽지 않는다면 너는 조금이나마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이 바람을 품고 그동안 쥐고 있던 네 손을 놓았으나 죽음만을 들여다보는 제게는 내일 따위가 어떤 미래를 품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너만은, 너는 내가ー
"하, 됐어. 어차피 곧 너도 포함해서 모든 일을 마무리할 참이었는데, 먼저 계약을 파기해준다니 고마울 따름이군."
"…론."
"그동안 수고했고, 더는 만날 일 없을 테니 신경 쓰지 마."
구할 수 없겠구나.
잭은 그대로 서류를 챙겨 밖으로 나가는 론의 뒷모습만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널 사랑한 것도, 널 되돌리려 한 것도 너무 늦어버렸어.
-
…네가 내 말을 듣고 대답해 줄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네게 내 말이 닿는지도 모르겠어.
그 많은 인간들을 죽여놓고도 내가 아직도 신이라고 불린다니 참 아이러니한데 말이야. 만약 내가 그 서류를 받았다면, 네가 바라던 마지막 부탁을 들어줬다면… 너는 모래바람으로 사라지지 않고 내 곁에 살아 있었을까?
…네가 웃는 날이, 올 수도 있었으려나?
-Fin.